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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스부르크 왕가, 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합스부르크 왕가 또는 합스부르크 왕조는 유럽 최대의 왕실 가문을 말하는데요, 특히 오스트리아의 왕실을 거의 600년 동안 지배한 것으로 유명하죠. 그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은 아마  프랑스왕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뚜아네트 일텐데요,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입니다. 아름다운 외모로 작은 요정이라 불렸다고 하는 마리 앙뚜아네트. 프랑스혁명이 시작되자 파리의 왕궁으로 연행되어 결국 국고를 낭비한 죄와 반혁명을 시도하였다는 죄명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정작 합스부르크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은 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닌 바로 엘리자베트 황후,  SiSi(씨씨)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인물이라는 거 아시나요? 오스트리아에서 이 황태자비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 지, SiSi 초콜릿, SiSi 호텔, SiSi와 관련된 정말 많은 상품이 있더라구요. 심지어 티켓 중에서도 Si-Si티켓이 있었어요! (쉰부른 궁전과 합스부르크 궁전을 모두 관람할 수 있는 티켓! +_+)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던, 그리고 항상 자유를 갈망했던 SiSi의 매력속으로 한 번 풍덩!
 
 



일단 초상화에서 알 수 있다시피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죠? +_+
엘리자베트 아말리아 에우게니아 폰 비텔스바흐(1837-1898)가 본명인 그녀는 1837년 12월 24일 독일 뮌헨에서 출생한 시씨는 아버지 바이에른 공작 막시밀리안과 어머니 바이에른 왕녀 루도비카 사이에서 태어나 포센호펜 성에서 자랐으며,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가족들은 그녀를 시씨(시시)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평범하게 자라던 그녀에게 터닝포인라고 말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1853년의 여름의 일입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녀에게 첫 눈에 반한 오스트리아 황제

  1853년 여름, 15살의 시시는 어머니와 언니 헬레네를 따라 상부 오스트리아에 있는 휴양지인 바트 이쉴로 여행을 갔는데 여행의 목적은 시시의 언니 헬레네가  오스트리아 황제이자 사촌 오빠인 프란츠 요제프의 관심을 끌 수 있기를 바랬던 거죠. 그런데  이때 23살의 프란츠 요제프는 헬레네 대신 시시에게 첫 눈에 반했고, 결국 두 사람은 1854년 빈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원래는 언니의 남편, 즉 형부가 될 수 있는 상대와 결혼을 하게 된 영화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된 거죠. 이 영화같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해요.  


그런데 막상 결혼하게 된 그녀에게 더 이상의 자유와 행복은 없었습니다. 당시 합스부르크 궁정의 예법은 매우 엄격했는데, 이 때문에 시시는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황제 부부는 네 아이를 낳았는데 어려서 죽은 첫째딸 조피와, 둘째딸 기젤라, 그리고 고대하던 황태자 루돌프와 10년 후에 낳은 막내딸 마리 발레리입니다.

영화처럼 행복하지만은 않은 결혼생활

아이들도 그녀에게 행복을 주지는 못했다고 해요. 시씨는 엉뚱한 행동을 곧잘 했고 집안 내력인 정서불안으로 인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데요, 그래서 결국 아이들을 키운 것은 시어머니인 조피 대공비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시어머니와의 고부갈등이 정말 심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시어머니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을 감시하고 내가 하는 행동들을 나쁘게만 생각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거기에 남편은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루돌프 황태자의 탄생 직후 황실 부부의 결혼 생활은 악화되기 시작했고, 시씨는 여행길에 올라, 마데이라, 헝가리, 영국, 코르푸(이오니아 제도) 등지를 방문하였습니다.

항상 자신을 가꿨던 매력적인 그녀

그녀가 그런데 이렇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빼어난 외모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그녀의 허리는 무려 20인치 였다고 합니다....(덜덜...) 뿐만아니라 시씨는 뛰어난 패션 감각과 미모, 다이어트, 운동에 의한 섭생과 스포츠, 특히 승마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돋보였다고 해요. 특히 승마의 경우 거의 선수 수준의 실력을 갖췄다고 합니다. 그녀는 화장대 앞에서 2,3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고 알려져있는데요, 특히 그녀의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제일 아꼈다고 해요. 지금처럼 화장품도 많이 없었던 시절이었을텐데 화장대에서 2,3시간을 -_-;;; 아무튼 항상 자신을 가꿨던 그녀의 노력만큼은 최고라고 생각해요 :) 그리고 그녀는 시를 정말 즐겼다고 합니다. 시를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서서 본인 스스로 시를 지었다고 하니, 정말 재주도 넘치네요. 아, 오디오 가이드에서 들었던 내용인데 그녀는 30세 이후로는 초상화를 남기지 않았다고 해요. 자신의 예쁜 모습만 간직하고 싶었던 걸까요?


외아들의 죽음이 가져온 비극 - 검정색과 함께한 나머지 삶  

1889년 시시의 삶은 외아들의 죽음으로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어머니를 닮아 정신 불안에 시달리던 당시 31살인 루돌프 황태자는 결혼생활 문제로 고민하다가 남작부인이었던 어린 애인인 마리아 베체라를 총으로 쏘고 자신도 뒤따라 자살하였습니다. 루돌프와 그의 애인은 저지 오스트리아에 있던 사냥꾼용 오두막집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요. 이 사건 이후로 그녀는 검정색 옷만 입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녀는 감정적으로 더 아래로 아래로만 침잠했다고 하네요. 더 열심히 여행을 다녔구요.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 

오스트리아에 머무르지 않고 여행을 즐겼던 그녀는 1898년 9월 10일, 당시 61살이던 시씨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괴한의 칼에 찔려 사망했습니다. 정말 어이없는 죽음이었죠.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암살자는 루이기 루체니라는 젊은이였는데 그는 원래 오를레앙 가의 공작을 죽일 생각이었으나 공작을 찾는데 실패하자, 그 대신에 황후를 공격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시씨는 몽트뢰로 가는 증기선을 탈 생각으로 제네바 호수의 산책로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루체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나는 왕족을 죽이고 싶었다. 어떤 사람인지는 상관이 없었다.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는 "당신은 모르오,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그녀는 그대신 기리기리 오스트리아인들의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사진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위치하고 있는 합스부르크 궁의 SiSi Museum과 황제의 아파트 입니다 :)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많은 사진을 찍지 못해서
가장 위 사진은 http://esthero.co.kr/20091112679 블로그에서 참고했습니다 ^ ^

 



 

오스트리아에 가시면 엘리자베트 황후 SiSi를 꼭 만나보세요 ! 


 



 

 - 참고자료 : 위키피디아, 다음 지식 자료, SiSi Museum 오디오 가이드

Trackback 0 And Comment 2
  1. hong 2011.08.03 12:20 address edit/delete reply

    햇..이런것을 하는구려!!! 뭔가 제대로 기자 블로그 느낌이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구려

  2. heon 2012.02.01 20:57 address edit/delete reply

    Sissi가 맞는 철자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