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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이라도 좀 가
수척한 니 꼴 좀 봐
새로운 사랑 찾아가
걱정마 난 괜찮아
정말로 난 괜찮아
행복해 난 잘 살아
내 성격 잘 알잖아
클럽이라도 좀 가

uh 대체 너 왜 그러는데
요즘에 니 컨셉이야 boy? 아님 뭔데
왜 여기저기에 넌 자꾸 불쌍한 척 해
날 버린 건 넌데 날 나쁜 년 만들어 왜
이제와 은근슬쩍 나한테 떠넘겨 죄 값?
도대체 내가 뭣 땜에 느껴야 해 죄책감
어느 날 갑자기였지 넌 내게 said good bye
언제까지 너만 기다릴 줄 알아 내가?
뭐 잠깐였지 너 떠나고서 힘들어했던 것도
뭘 몰랐던거지 너 아니면 안 될 줄 알았던 건
좋은 경험했어 니 덕에
그래서 나 지금은 두배로 행복해
그러니 내 걱정은 안해두 돼
good morning 창 밖을 봐 baby
손 잡고 데이트 하기 좋은 날이야 baby
친구한테 소개팅도 좀 받아보고
나가 놀아 페북에 소설 그만 쓰고 yeah

클럽이라도 좀 가
클럽이라도 좀 가
수척한 니 꼴 좀 봐
새로운 사랑 찾아가
걱정마 난 괜찮아
정말로 난 괜찮아
행복해 난 잘 살아
내 성격 잘 알잖아
클럽이라도 좀 가

니가 이러는거 충분히 돼 이해
허나 너두 알지 늦었단 걸 이젠
so 이쯤에서 그만 해주겠니 날 위해
주위 친구들에게까지 이게 왠 민폐야
다이아를 버리고 깨진 유리조각을 뭣
하러 주워 나의 곁에 이 사람 너무도 소중해
네게 돌아갈 이유가 없잖아
내가 아닌 누구라도 그럴 걸 아마
거들떠보지도 않던 커플 티셔츠
어쩌자고 지금 입고 돌아다녀?
자꾸 실수로 전화가 걸려?
그럼 간단해 그냥 내 번호를 지워
그래 나도 알지 물론
나 같은 여잔 못 만날거란 뻔한 결론
그렇다고 그렇게 집에만 있지 말고
멋도 좀 부리고 오늘은 불금이니까

클럽이라도 좀 가
클럽이라도 좀 가
수척한 니 꼴 좀 봐
새로운 사랑 찾아가
걱정마 난 괜찮아
정말로 난 괜찮아
행복해 난 잘 살아
내 성격 잘 알잖아
클럽이라도 좀 가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클럽이라도 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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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첨부하고 싶었지만 실패... ㅠㅠㅜㅜㅜㅜㅜㅜ

헤이즈라는 신인 힙합 가수의 '클럽이라도 좀 가'라는 곡!

가사도 진짜 매력있는데 목소리도 좋다. '조금만 더 방황하고'란 곡도 매력터짐 -3- 


여성 힙합 뮤지션이 좋은 이유는 남성적이고 거칠어야만 한다는 힙합 장르에 대한 편견을 깼다는 것 때문인 거 같다.

윤미래같은 여성힙합 1세대도 좋았고 렉시, 이비아도 그런 이유로 좋아했지만 지금까지 헤이즈가 가장 좋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여성성을 완전히 잃지 않아서, 왠지 자기 모습 그대로인 거 같아서랄까. 


렉시는 쎈 여자가 되어야한다는 압박감(?)을 줬고  

이비아는 '나 해도 돼?' 라는 곡에서 알 수 있듯이.. 남성이 원하는 여성상을 강요당한 느낌이었다. 팬층도 오빠들 위주였고..

헤이즈는 동네에 좀 나랑 친한 언니가 자기 얘기 들려주는 거 같아서 낯설지 않다. 

극단적이지 않은 나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어서 좋다. 

있는 그대로의 너여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3- 앞으로 계속계속 팬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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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영혼 없는 수재

한때 “영혼(靈魂) 없는 관료”라는 말이 유행한 일이 있었다. 공무원들은 자기 나름의 소신 없이 권력자가 시키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낸다는 말이었다. 한국 최고의 엘리트들인 고위 공무원조차 국가를 위해 ‘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보다, 위에서 시킨 일을 ‘어떻게’ 해낼까만 궁리하는 단순 기술자로 추락했다는 비웃음이 담긴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보면 공무원만 영혼이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최근의 의료파업 사태를 보면서 의사들이 과연 생명의 존엄성을 살리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의료기술자로 전락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요즘 언론을 달구는 ‘황제 노역’ 논란에서는 법조인들이 사회 정의를 세우려는 사명감보다 단순 법률기술자로 변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의사나 변호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의 수재(秀才)들이 모인 소위 일류 대학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기보다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한 스펙 쌓기나 고시 공부에 몰두하고 있어 대학 본연의 모습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문제는 상황이 이러한데도 기본으로 돌아가 대학다운 모습을 되찾자는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기는 대학 자체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적 사업과 스펙 쌓기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마다 건물 등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 경쟁에 나서고 있고, 외부 기관들이 엉성한 잣대로 다양한 대학들을 한 줄로 세우는 대학평가에서 순위를 한 단계라도 올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지 않는가.

 이 과정에서 학생들에 대한 교수와 대학 당국의 관심은 줄어들고 진정한 학생 교육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대학평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논문 쓰기에 바쁜 교수들은 학부 학생들과 교감할 수 있는 접촉을 줄이고 있으며,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줄 시간은 별로 없다. 교육과정도 학생들 교육에 꼭 필요한 교과목보다 교수들이 가르치고 싶은 과목 위주로 편성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자신들의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그나마 안전하게 보이는 스펙 쌓기에 나서는 것이다. ‘영혼 없는 수재’가 되는 첩경이다.

 사실 학부교육 경시 현상은 외국의 일류 대학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예를 들어 하버드대학교 학부대학장을 역임한 해리 R 루이스 교수가 쓴 『영혼 없는 우수성(Excellence without a soul)』(2006, Public Affairs)이라는 책은 하버드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부교육 경시 현상을 자세하고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는 “아직도 대학에서는 매년 ‘교육상’을 시상하는 등 학부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립 서비스는 남아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학생들을 좀 더 나은 인격체로 기를 수 있나’ 하는 문제에 대해서 교수들끼리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을 본 적은 거의 없다”라는 식의 솔직한 자기비판이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외국의 전통 있는 대학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끊임없이 ‘대학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대 변화에 따라 대학교육, 특히 교양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이러한 고민 자체가 부족하다. 그러니 입시 위주의 중고등학교 교육에 찌들어 균형 잡힌 교양인이 될 기회를 놓친 우리 학생들은 대학에서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영혼 없는 수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젊은 세대가 자기 나름대로의 꿈이나 비전 없는 ‘영혼 없는 수재’가 되면 우리 사회의 앞날 또한 암담해진다. 1990년 서울대학교와 국제학술교류협정을 맺으려고 한국을 찾은 당시 일본 도쿄대 총장 아리마 교수는 “내가 만나본 서울대 학생들의 눈빛에서는 패기를 볼 수 있다. 한국의 앞날이 밝다는 징조다. 지금의 도쿄대 학생들에게서는 그러한 패기를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후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하였다. 한국의 대학생들이 ‘영혼 없는 기술자’가 되는 순간, 우리나라의 앞날도 걱정이 되는 이유다.

 그렇기에 적어도 한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대학이라면, 루이스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을 깊이 새겨듣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대학 교육의 사명은 가족과 고등학교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만 자라온 10대 신입생들을, 자신의 인생과 시민사회를 위해 책임질 줄 아는 지식과 지혜를 갖춘 성인 졸업생으로 길러내는 일이다.” 우리 대학들이 얼마나 이러한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아니 잘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25&aid=000232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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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싶다면 ‘왜’ 쓰고 싶은지 생각해라

저는 늦게라도 소설을 쓰고 싶어하시는 분한테 ‘진짜 소설을 쓰고 싶어?’라고 얘기하곤 해요. 왜 쓰고 싶은지 스스로한테 질문해야 될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글짓기를 좋아했고, 문학소녀 시절을 보냈고, 국문학과에 갔고, 거기서도 많은 글도 쓰고 했지만, 그때는 왜 소설가가 못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저는 세상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것은 세상에 대해서 질문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예요. 저는 그 때만 해도 정답을 맞히는 기분으로 세상을 살았기 때문에 뭐가 주어졌으면 그걸 맞히려고만 했지, 내 식대로 무엇을 보고, 내 식대로 새로 해석해 보고, 내 방식대로 사물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런 나만의 시각이나 관점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할 얘기가 없죠. 물론 글 솜씨를 가지고 뭔가를 써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그런 것은 남의 흉내이거나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형태의 허영심의 발로였을 뿐이지, 내가 진정 하고 싶고, 궁금하고, 나의 고통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싶다는 간절함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늦게라도, 혹은 지금이라도 (소설을) 쓰시려고 하는 분들에게 저는 왜 쓰려고 하는지 그것부터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고, 그러면 뭘 쓰고 싶은지도 생각이 날 것 같아요.

출처 http://bookshelf.naver.com/story/view.nhn?start_month=201102 


꼭 소설만이 아니라 글이라는 것을 쓴다면 '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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